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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본문
패러데이는 어린 시절에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과학자로 남았다.물리학에서, 패러데이는 전자기장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확립하는 직류가 흐르는 도체 주위의 자기장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자성이 광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과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 또한 확립하였다.
화학자로서, 패러데이는 벤젠을 발견했고, 염소(Cl)의 격자무늬 수산화물에 대해 조사했으며 초기 형태의 벤젠 버너, 산화 상태들의 체계, 그리고 양극, 음극, 전극, 이온과 같이 널리 쓰이는 전문 용어들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패러데이는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의 초대 풀러 화학 석좌교수 (Fullerian Professor of Chemistry)가 되었고, 평생 동안 그 직위를 유지했다.
패러데이는 그의 생각들을 매우 명료하고 간단한 언어로 표현한 훌륭한 실험주의자였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패러데이를 포함한 과학자들의 업적을 모아 현대 전자기학에서 기초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러 쌍의 공식들로 요약을 하였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대장장이인 제임스 패러데이 (1761~1810)와 농부의 딸인 마가렛(1764~1838)사이에서 4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패러데이의 아버지는 그 마을의 대장장이의 견습생으로 일하였고, 그의 가족은 길버트 가로 이사해서 살다가 5년쯤 후에 다른 마을(Jacob’s Well Mews)로 이사했다.
패러데이의 동생 마가렛(1802-1862)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패러데이는 읽기, 쓰기, 산수의 기초적인 것을 배울 정도의 정식 교육만을 받았다.
패러데이는 실력이 좋고 사고가 개방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견습생이었다.
마이클은 제본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는 1806년 제인 마르켓의 유명한 화학 입문서인 《화학의 대화》와 제임스 타이틀러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판도 있었다.
이 영향으로 패러데이는 1809년에 신문과 잡지에서 예술과 과학에 대한 글을 읽고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런던 시의 철학 협회가 개최한 저녁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혼자 전기에 대해 많이 공부해 동료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되었다.
그 중 한 고객이 깊은 감명을 받으며 왕립 연구소 회원이자 음악가인 자신의 아버지 윌리엄 댄스에게 그 책들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윌리엄 댄스 역시 깊은 인상을 받으며 패러데이에게 왕립 연구소의 인기 강사인 험프리 데이비의 화학 강연 티켓을 주었다.
패러데이는 염소의 특성에 대한 데이비의 견해에 마음을 사로잡혔으며, 이 강연 또한 그림과 함께 기록하여 책으로 묶어 데이비에게 보냈다.강연 직후, 데이비는 삼염화질소 실험 중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시력에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기간 동안 자신의 실험을 기록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젊은 패러데이가 발탁되었다.
데이비의 실험을 대필하는 작업은 단지 며칠뿐 이었으나 패러데이는 제본 기능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1812년 12월 말, 패러데이는 그 해에 데이비의 강연을 직접 필기하여 제본한 책과 함께 데이비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썼다.
패러데이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1813년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데이비는 패러데이를 자신의 비서 겸 조수로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의 봉쇄로 서인도 제도로부터 수입한 사탕수수 설탕의 공급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1811년 이후에는 사탕수수 대신 사탕무가 대체공급원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과거 패러데이가 왕립연구소에서 맡았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사탕무의 뿌리에서 설탕을 추출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 그 작업이 산업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자 패러데이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또한 그들은 저명한 화학자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의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같은 날, 전기학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인 앙드레마리 앙페르, 니콜라스 클레멘트, 그리고 찰스 버나드 데솜스(1771~1862)가 데이비를 방문했는데, 그들은 짙은 색의 결정이면서도 열에 의해 보라색 증기로 변하는 버나드 콜토이스에 의해 2년 전에 발견된 물질을 보여주었다.
버나드 콜토이스는 이 물질은 염소와 유사하다고 확신했지만, 며칠간의 실험을 통해 데이비는 이 물질이 염소와는 다른 새로운 원소라고 확신했고 보라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요오드'라 명명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파리 근처에 위치한 퐁텐블로, 오베르뉴, 그리고 지중해 연안인 몽펠리에를 방문했다.
그들은 플로렌스의 실험아카데미에서 대형 볼록렌즈를 이용해서 태양빛을 모아 다이아몬드를 연소시켰으며, 이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현상을 보고 다이아몬드가 탄소 원소의 독특한 형태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여행은 패러데이에게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고, 패러데이의 세계관을 넓혀 주었다.
과학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직접 방문한 것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본 경험은 패러데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 대륙 여행 이후 1815년 5월, 패러데이는 왕립 협회 실험실의 장비와 광물학 물품의 관리자 겸 조수로 다시 고용되었다.
그리 많지 않은 급료(주당 30실링)와 왕립 협회 꼭대기에 있는 숙소는 비록 썩 좋지 않았지만, 패러데이는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실험실의 장비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왕립 협회 회원들의 분석업무와 기타 과학적 업무들을 맡아야 했다.
실험실과 조수, 숙소, 도서관이 모두 제공된다는 이점에 의해 패러데이는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 약 4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또한, 패러데이는 교수직에 얽매이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강의를 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왕립 협회의 도움으로 패러데이는 당시 유명한 화학자인 험프리 데이비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왕립 협회와 데이비의 영향으로 패러데이는 과학적으로 크게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패러데이는 샌더매니언 집회의 회원이자 패러데이 자신보다 아홉살 어린 사라 바너드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라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패러데이는 평소 과학연구에 열정을 쏟는 것처럼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들은 평생 아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행복은 변함 없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의 조수로서 염소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었다.
패러데이는 임계점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그 위의 온도에서는 물질의 상태가 압력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발견해냈다.
1825년, 패러데이는 런던 가스공장에서 찌꺼기로 남은 가스를 분석했는데, 새로운 탄화수소를 발견하였으며 당시에 그것을 수소의 비카르부렛(bicarburet)이라고 표현했다.
1826년, 패러데이는 나프탈렌의 분자구조를 알아냈으며, 두 가지의 샘플 결정을 만들었다.
1827년 4월, 패러데이는 실용적인 화학에 대한 안내를 포함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는 화학 연구를 막 시작한 사람들을 겨냥하여 만든 것이었다.
1825년, 패러데이는 왕립학회로부터 망원경에 사용될 유리의 광학적 성질을 연구해달라는 위탁을 받았다.
1827년, 왕립연구소는 패러데이에게 특수 화로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패러데이는 본격적으로 실험에 착수했다.
패러데이의 과제는 어느 한 성분이 부분적으로 농축되어 있지 않으면서 기포나 찰흔이 없는 균일한 유리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온도를 조절하고 유리의 산화납 성분을 또다른 납 화합물 붕규산염으로 교체하기도 하며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착색유리가 형성되는 등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마침내 패러데이는 그 원인이 주철 팬으로 인해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붕규산염을 환원시켜 납을 생성했기 때문임을 알아냈다.
1829년 무렵, 기타 문제점들도 모두 해결한 패러데이는 왕립학회의 베이커리언 강의에서 연구의 성공을 발표했다.
1821년, 패러데이는 <물리학연보>(Annals of Philosophy)의 편집장 리차드 필립스(Richard Philips)로부터 전기와 자기에 대해 아는 모든 것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꼼꼼한 성격의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직접 외르스테드의 실험을 실시했다.
패러데이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을 고정시키고 그 주위에서 자석을 움직이는 실험을 고안해냈고, 9월 3일, 드디어 처음으로 그 실험에서 “도선은 항상 자석막대기와 직각을 이루며 움직이려 하고 확실히 그 주위를 원형으로 돌게 된다.”라는 결과와 함께 성공하였다.
출판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울러스턴과 데이비는 패러데이의 글에 의심을 표했다.
그들은 패러데이가 “전자기력에 의한 회전(Electromagnetic rotation)”에 대한 울러스턴의 생각을 훔쳐갔으며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비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자, 패러데이는 결국 스스로 <물리학 연보>에 쓴 글의 저자가 자신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1822년, 패러데이는 실험실에서 자신의 노트에 “자기는 전기로 변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전자기 이론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패러데이는 연구를 단념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윌리엄 스터전(참고)과 프랑소와 아라고(참고)가 전류의 변화가 자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전자기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는 패러데이가 가지고 있던 전자기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고, 1831년 8월 29일, 패러데이는 전자기 실험을 시작했다.
또한, 회로를 연결할 때, 이번에는 바늘은 반대 방향으로 또다시 움직였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패러데이는 전지와 연결된 회로의 전류의 변화가 철 고리의 자기에 영향을 미쳤고, 자기의 변화는 반대쪽 회로의 전류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후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이용하여 역학적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인 발전기를 개발하였다.
패러데이는 다양한 종류의 전기의 일반적인 효과를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검류계를 이용하여 동일한 양의 정적 볼타 전기를 방전하는 효과도 연구하였다.
1832년이 끝날 무렵, 패러데이는 본격적으로 ‘전기 화학 분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1833년 말, 패러데이는 전압전류계에서 물에 용해된 다양한 물질로 실험을 시작했다.
이게 패러데이의 두 번째 법칙이다.이렇게 전기 분해에 관한 두 가지 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는 1 화학 당량을 유리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기의 양의 단위인 ‘패럿'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1836년 패러데이는 충전된 도체의 전하가 도체 표면에만 분포하고 비어 있는 내부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도체로 둘러싸인 내부의 빈 공간은 전류가 흐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패러데이는 실험을 계획했다.
1845년 6월, 패러데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열리는 과학 협회에 갔다.
8월 초 톰슨은 패러데이에게 투명한 부도체에 미치는 편광의 영향을 물어보기 위해 편지를 보냈다.
패러데이는 1833년에 그가 결론짓지 못한 결과를 말해주고, 다시 결과를 보내주겠다 약속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패러데이는 어떤 방식을 통해 빛과 전기가 관련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편광 평면에 미치는 전기장의 효과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자기장 안에 광학유리를 매달고 유리에 편광을 통과시켰다.
9월 18일, 패러데이는 울리치의 왕립 육군 사관학교로부터 얻어온 강력한 전자석을 이용해 자기와 빛이 물리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정의했다.
패러데이는 울리치의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빌려온 자석을 통해 물질이 자성을 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장에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했다.
자기력선과 자기장
편광에 미치는 자기장의 영향에 대해 발견한 후, 패러데이는 자기력선이 실제로 물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반자성체의 특이한 현상을 기존의 자극으로 설명하기 힘들었고, 이것이 패러데이와 자성은 전극의 성질이라고 믿고 있었던 빌헬름 에두아르트 베버와 논쟁하게 되었다.
1848년 패러데이는 자석의 영향으로 인한 반자성체의 변화를 조사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는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 현상은 기존의 척력과 인력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실험 보고서에서 패러데이는 처음으로 위치에 따라 두 개의 자극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개념의 자기장을 언급하였다.
사실 패러데이는 48세 밖에 안 되었을 때부터 기억 상실의 증상이 시작되었다.
1861년에 드 라 리브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 때문에 즐거움뿐만 아니라 고통도 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과학 연구를 하지 못한 것은 전혀 아니고 연구와 강연을 계속했다.
패러데이는 왕립연구소와 런던의 과학계에서는 물론 외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졌다.
1858년에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의 요청으로 런던 템스 강변의 햄프턴 코트 근처의 저택에서 패러데이 부부가 살 수 있도록 하였다.
패러데이는 중력과 전기에 관한 연구를 하였는데 중력과 전기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큰 납덩이를 탑에서 떨어뜨려 납의 전하를 떨어뜨리기 전과 후에 측정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 후로도 패러데이는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1862년에 불꽃으로 가열한 나트륨과 다른 금속의 스펙트럼이 전자기장에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실험을 하였다.
패러데이는 1861년 크리스마스에 마지막 강의를 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1867년 8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패러데이의 겸손함과 검소함은 종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는 후에 그의 과학적 업적과 관련하여 큰 의미를 갖는다.
샌더매니언 집회의 회원으로서, 그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 와 같이 세속적인 부에 관련한 성서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해 패러데이는 자신의 어떤 발명에 대해서도 특허를 얻지 않았으며 높은 봉급을 원하지도 않았고 자선 사업에 기부를 많이 했다.
패러데이는 항상 포기할 각오를 가지고 일에 임했었고, 명예를 주겠다는 손길을 철저히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발견이 지닌 가치만은 명확히 이해했다.
실제로 패러데이는 자신의 일과 공부에 대해서는 결코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연구를 위해 지급된 봉급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패러데이는 생각과 발견에 대해 주어지는 대우나 보답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설사 협회나 아카데미가, 심지어 왕이나 통치자가 개입한다 해도 가치저하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또한, 패러데이는 천재일 뿐만 아니라 과학이란 학문을 대중화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 강연회에 패러데이 스스로도 약 20번가량 참여했었고, 현재 영국의 20파운드권 지폐에는 이 강연을 하는 패러데이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처럼 패러데이는 슬하에 아이가 없었지만, 자신의 유년시절 여러 강연을 들으며 과학에 대한 열정을 얻고 과학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찾았던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에 수학적기호화를 사용 하지 않았기에 수학자들에게는 무시당하기 일수였다.
패러데이는 수학을 인용했지만 기호화 정량화 수치화로 상세히 기록하진 않았다.
(상상만으로 상세도면을 그리는 정도)하지만, 패러데이는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관점과 실험 사실로만 연구에 몰두했다.
패러데이는 훗날 맥스웰이 논증 하는 이론으로 다시 명성을 얻게 된다.
맥스웰 이론은 패러데이의 이론을 수학적 기호를 사용하여 다시 재정립 한 것이다.
패러데이 담화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는 1860년 왕립 협회의 크리스마스 강연회에서 패러데이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여섯 번의 강연을 윌리엄 크룩스가 요약하여 책으로 펴낸 것으로, 원제목은 《양초 한자루의 화학사(The Chemical History of a Candle)》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패러데이의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 능력과, 특정한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가지는 아름답고 심오한 의미를 밝히고, 해석하려는 열의를 엿볼 수 있다.
금과 은의 번쩍거리는 아름다움, 다이아몬드나 루비, 그 밖의 보석의 눈부신 아름다움도 촛불의 광채와 아름다움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이렇듯 강연을 듣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한 패러데이는 계속해서 말한다.
따라서 우리 인류는 이웃 사람의 덕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패러데이는 <양초 한 자루의 화학사>의 여섯 강연이 모두 끝날 즈음 다음과 같은 소망을 말한다.
Francis, London 1839–1855, Band 1, Band 2, Band 3.
Francis, London 1859, Digitalisat.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