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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본문
달라이 라마(티베트어: ཏ་ཱལའི་བླ་མ་ taa-la’i bla-ma)는 스스로를 1391년부터 전세된 티베트 불교 겔룩파에 속하는 자들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이자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가원수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땐진 갸초로 1989년 노벨평화상과 루스벨트 자유상(1994), 세계안보평화상(1994) 등을 받았다.
이 전생활불소남ㆍ개초는 1578년 청해(靑海)에 가서 몽골의 알탄 칸과 만나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받았다.
8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 권력의 독점을 섭정 등에 허용했기 때문에 실권계승의 암투가 계속되어서 9세부터 12세까지의 달라이 라마는 요절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14세는 1959년 이후 중국과 대립해서 인도로 망명하였다.달라이 라마 측에서는 티베트의 다른 모든 불교 종파는 달라이 라마를 전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한다고 주장한다.
달라이 라마는 겔룩파가 티베트에 진출한 이래(17세기 중엽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차지한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티베트의 통치자였다.
몽골어 ‘달라이’는 갸초(Gyatso, 지혜를 가진 영혼)와 함께 ‘바다’를 뜻하며, 티베트어 ‘라마’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grub, Drup)’에 해당하는 말로 ‘영적인 스승’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스스로 자신이 깨달은 자라는 것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
특히 텐진 갸초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반대하여 인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는 한편 국제 사회에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환생을 관리하는 중요한 동반자였지만 현대 들어 판첸 라마가 중국 정부에 근접하면서 두 라마의 거리는 멀어졌다.
결국 지금은 달라이 라마가 지정한 판첸 라마와 중국 정부가 지정한 판첸 라마가 라마교(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로 다른 위치에서 공존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최근 티베트인 거주 지역에서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숭배를 일부 허용한 것으로 알려져 중국 당국의 티베트 정책 변화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데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티베트인 거주지역인 칭하이(靑海)성과 쓰촨(四川)성에서 승려들이 공개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정치적' 인물이 아닌 종교 지도자로 숭상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1945년 티베트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하였지만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티베트 정부에 대하여 중국의 일부로 편입하면서 갈등이 생겨났다.
이에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화평해방'을 받아들여 1951년 5월 티베트 협정에 조인한 뒤, 1954년 티베트 지방정부 주석, 전국 인민대표대회 티베트 대표,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 등을 역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반(反)중국 반란이 일어나 총 12만여 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이 학살되고, 중국군에 의해 6,000여 개의 불교사원이 파괴되자 국제적 지원과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인도로 망명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이러한 공로로 세계인권단체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차츰 서방세계에 알려지면서 관심과 지원으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루스벨트 자유상(1994), 세계안보평화상(1994) 등을 받았으며 현재도 세계 각국을 오가며 계속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에 있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텐진 갸초)도 세계 각지에서 밀교 의식을 행하고 있는데 달라이라마로 포탈라(補陀落)에서 즉위한 이래, 티베트족들의 정신적 신앙적 지주로서 평생을 중국으로부터 티베트의 독립을 이끌어 내는 데 헌신해 온 티베트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조르주 바타이유」, 티베트의 라마교, 유기환 저, 살림(2006년, 89~101p)
가짜 달라이 라마를 세우려는 중국 공산당의 계획이 폭로되다
My body is Tibetan but spiritually I’m an Indian,’ says the Dalai Lama